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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촘스키는 왜 AI를 두려워하나

by rollirolli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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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동물인 비버는 댐을 만든다. 거미는 거미줄을 치고, 새는 둥지를 만든다. 이런 고도의 작업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것을 확장된 표현형이라 이름 지었다. 있는 그대로의 유전자를 '유전형'이라 하고, 유전자가 드러내는 속성을 '표현형'이라 한다. 도킨스는 표현형의 외연을 눈의 색깔이나 세포의 종류와 같은 개체 내부의 속성에서 해방시켜 비버의 댐이나 거미줄같이 개체 외부로 확장했다.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다. 

 

최근 후성 유전학이 부상하고 있다. 유전은 DNA로부터만 이루어진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DNA를 실패처럼 돌돌 말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이나 세포 내의 환경이 같이 관여한다. 이런 것을 후성 유전이라 한다. 

 

이 환경에는 DNA의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히스톤이 DNA를 실패처럼 감는 행위는 일군의 유전자에 의한다. 다만 세포가 알맞은 화학적 조성을 하고 있을 때만 작동한다. 세포의 화학적 조정은 DNA가 아닌 난자의 세포질과 숙주의 생활 방식에서도 상당히 기원한다. 

 

히스톤이 유전자를 감는 건축술은 비버가 댐을 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부의 흡연으로 세포 내 화학적 조성이 달라지면 태아의 발생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포 내 NAD 함량이 줄어들면 유전자의 발현과 제한에 영향을 미쳐 DNA의 엔트로피가 높아진다. 즉 '정보량'이 줄어든다.  노화의 전형적 특징이다. 확장된 표현형은 광의의 후성 유전으로 볼 수 있다. 

 

유전자 결정론과 후성 유전은 보완 관계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후성 유전의 영향을 점점 많이 받는다. 사회생물학 분야에서는 인간이 본성의 지배를 받는가, 후천적 양육의 지배를 받는가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다. 언어학에서는 선험주의와 경험주의 논쟁이 있다. 철학에서의 연역주의와 귀납주의의 대립도 구조가 비슷하다. 이런 논쟁에서는 양쪽 극단 대표선수가 있다. 언어 선험주의의 극단에는 노엄 촘스키가 있다. 촘스키는 인간이 선험적으로 언어의 통사 구조를 뇌에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런 극단적 스탠스를 취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기 쉽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는 대뇌피질의 양옆 부분이 모두 공간감을 관장한다. 이 중 인간의 왼쪽 측두엽이 언어를 관장하도록 변화했다. 언어 기능이 왼쪽 측두엽에 존재하던 기존의 기능과 전혀 상관없이 갑자기 발생하기는 힘들 것이다. 공간감을 담당하던 구조가 자연스럽게 확장 변형되어 언어를 담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등 사고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고 언어는 그 부산물의 하나일 것이다. 생각은 움직임의 한 형태라는 말이 왼쪽 측두엽의 진화 관계를 잘 표현한다. 

 

챗GPT가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내자 촘스키는 거대한 표절 시스템이라고 폄하한다. 인간만이 선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언어 능력이 언어학적 지식이나 선험적 세팅 없이 데이터만으로 AI에서 발현하는 상황이 반갑지 않을 만도 하다. 

 

이런 대립적 논쟁의 해답은 대게 싱겁다. 양쪽이 적당히 섞여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케이스에 따라 가중치 배분이 다를 뿐이다. 창조론은 우주의 형성에 관한 선험주의이고 진화론은 경험주의 귀납주의다. 범신론은 이들의 중간 어디쯤에 있다.

 

비슷한 논쟁들에서 대체로 경험주의와 귀납주의의 위상이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후성 유전, 표현형의 확장 관점에서 보면 지금처럼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는 세대는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능력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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